[이정랑의 고전소통] 인형용권(因形用權)

적의 형세를 파악하고 작전을 펼친다.

이정랑 | 기사입력 2019/04/27 [13:03]

[이정랑의 고전소통] 인형용권(因形用權)

적의 형세를 파악하고 작전을 펼친다.

이정랑 | 입력 : 2019/04/27 [13:03]

적의 형세를 파악하고 작전을 펼친다.

 

“전쟁에서 긴요한 것은 우선 적군의 대장이 어떤 사람인가 알아보고 그 재능을 상세히 관찰하는 동시에, 적의 형세에 따라 적당히 대처해나가는 일이다. 이렇게 해야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공을 세울 수 있다.”

‘오자병법’의 ‘논장(論將’에 나오는 말이다.

 

지도자로서 ‘재능을 상세히 관찰하는 동시에 적의 형세에 따라 적당히 대처해나가는’, ‘인형용권’의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는 지도 수준과 통치 예술을 가늠하는 저울이다. 정치상 ‘인형용권’은 통치 원리를 깊이 있게 인식하여 지도 원리를 활용하는 데 필수적이다. 군사상 ‘인형용권’은 상대 지휘자의 개성 및 특성과 맞아떨어져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는 ‘상대를 아는’ ‘지피(知彼)’의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능숙한 지휘관은 자신을 잘 알고 적장의 특징도 잘 파악한 위에서 대책을 세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우스운 일화가 전해온다.

 

송나라 때 북요(北遼) 정권의 8대왕들이 10만에 달하는 번병(番兵)을 이끌고 중원을 침범해왔다. 그들은 국경 관문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두 명의 병사를 송으로 보내 서신을 전달했다. 8대왕들은 하나같이 교만 방자하여 송나라를 깔보았다. 이 서신에는 시가 한 수 적혀 있었는데 상련만 있고 아래 구절은 없었다. 그들은 송 쪽에서 아래 구절을 지어내기만 한다면 자진해서 군사를 거두어 물러가겠노라고 했다. 그 시 같지도 않은 시의 상련은 이러 했다.

 

큰 활을 당기고 준마를 탄 금슬비파 같은 8대왕,
왕들은 모두 높은 자리에 있고 창 하나만 들고 홀로 싸우는구나.

 

송 진영의 장군들은 돌아가며 이 시를 보았지만 막상 아래 구절에 대꾸할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웬 서당 선생이 이 소식을 듣고는 밤을 새워 송 진영으로 달려와 아래 구절을 지어냈다.

 

사람 같지도 않은 용의 옷을 훔쳐 입은 여덟 마리 귀신, 
그 귀신들이 모두들 곁에 서서 손을 마주 잡고 끄는구나.

 

서당 선생의 아래 구절은 참으로 절묘했고 내용상 8대왕을 통쾌하게 혼내주는 것이었다. 병사는 돌아가 이 아래 구절이 적힌 편지를 8대왕에게 전했다. 요의 장군들이 보고는 수치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철수는커녕 그날 밤으로 송나라 진영에 기습을 가해왔다. 송 군영에서는 편지를 보면 8대왕들이 틀림없이 격분하여 쳐들어오리라고 예상하고 미리 병사들을 매복시켜두었다. 그와 아울러 적병이 공격해오는 틈을 타 방어가 허술한 적 진영을 기습했다. 매복 군과 싸우는 한편 후방 자기진영을 기습당한 요병은 퇴로를 차단당한 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무너졌다. 8대왕 중 일부는 전사하고 일부는 사로잡혔다. 이 전투 이후 요나라 정권은 30여 년 동안 중원을 함부로 넘보지 못했다.

 

위 예는 적장의 개성과 특성을 깊이 이해한 기초 위에서 성공을 거둔 좋은 본보기다. 적장이 모든 것을 깔보는 안하무인의 정서를 갖고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해서, 적장을 분노케 하고 또 교묘하게 병사를 포진시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정랑 언론인(중국고전 연구가) 
경인일보/호남매일/한서일보/의정뉴스/메스컴신문/노인신문/시정일보/조선일보/서울일보 기자, 편집국장, 논설실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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