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을 사칭하는 ‘UN군’사령부(‘유엔’사)를 해체해야 하는 이유 - 유엔의 날을 맞이하며
오늘은 우리가 오랫동안 ‘유엔 데이’라고 부르던, 국제연합(유엔)의 날이다. 유엔의 날을 맞이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유엔군사령부의 존재다.
지난 8월, 4. 27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남북철도 공동조사 작업이 느닷없이 유엔군사령부(이하 유엔사)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유엔사가 오랜만에 세상에 그의 존재를 드러냈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냉전의 유물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유엔사는 무엇이기에, 언제 한반도에 들어와 남북이 이젠 싸움을 중지하고 평화롭게 살아보자는데 남북 정상 간의 합의이행에까지 재를 뿌리는 것인가?
우선 ‘유엔군사령부’라고 하니 유엔의 산하 기구 아니면 유엔이 창설한 군대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유엔사는 유엔의 군대가 아니다.
1950년 6. 25가 발발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몇 개의 결의안을 채택하는데, 6월 27일 83호 결의안을 통해 “유엔 회원국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격을 격퇴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대한민국에 원조를 할 것”을 권고하고, 7월 7일 84호 결의안을 통해 “군대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는 모든 회원국은 미국이 통제하는 통합된 사령부를 통해 활동할 것과 미국은 이 통합된 사령부의 행위에 대한 보고서를 안보리에 제출할 것”을, 그리고 7월 31일의 85호 결의안을 통해 “맥아더 장군의 지휘권 아래 유엔기구와 비정부기구들이 대한민국의 민간인을 원조할 것”을 권고한바 있다.
그렇듯이 권고 결의안 83호, 84호와 85호를 토대로 만들어지긴 했으나, 그렇다고 당시 유엔에서 ‘유엔군’이라는 이름을 허용한 것은 아니었고 유엔기 사용을 허락했을 뿐이었다.
지난 1994년에 갈리 사무총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통합사령부’를 설립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것을 권고했고, 그렇기에 통합사령부의 해산명령은 유엔이 아닌 미국의 권한 하에 있다”고 밝힌 것이 이를 입증한다.
말하자면 갈리 사무총장이 말했듯이, 유엔에서 (권고)결의한 것은 정확하게는 ‘미국 지휘하의 연합군 통합사령부’를 만들라는 것이었는데, 미국이 유엔의 이름을 쓰려는 목적으로 명칭을 교묘하게 ‘유엔군사령부’라고 작명한 것이었다. 그것은 전 세계로 하여금 ‘미국 지휘하의 연합군 통합사령부’가 마치 유엔의 군대인양 착각하게 만든 거대한 사기극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부터 ‘유엔군사령부(유엔사)’ 라는 명칭을 쓰지 말고 ‘미통사(미국주도 통합군사령부)’ 또는 ‘미연사(미국주도 연합군사령부)’ 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엔사의 유엔字에는 미국의 ‘주장’이라는 뜻으로 ‘유엔’ 또는 ‘UN’처럼 작은따옴표를 할 것이다.)
1975년 30차 유엔총회 결의로 ‘유엔’사 해체의 위기가 다가오자 미국은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해서 ‘유엔’사가 갖고 있던 한국군과 주한미군에 대한 지휘권을 한미연합사에 넘겼고, 그 후로 ‘유엔’사는 현재 정전협정 관련 임무만 맡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껍데기만 남은 줄 알았던 ‘유엔’사가 무수한 월권을 저지르는 것이다. 그중 가장 큰 것이 비무장지대 “관할권”을 주장하며 남북이 오가는 길목에서 훼방을 놓는 것이다. 우리 대통령조차도 ‘유엔’사령관(즉, 주한미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야 군사분계선을 넘을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유엔군사령관의 허락을 받아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그리고 남북이 합의해서 공동작업을 벌이려 해도 매번 승인을 얻어야 한다.
‘유엔’사, 즉 미국이 주장하는 비무장지대 ‘관할권’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리고 소위 그 ‘관할권’이 미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우선 정전협정에는 ‘관할권’에 대한 규정이 없다. ‘관리권’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이다. 미국이 자기네들에게 유리하게 과잉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관할권’ 또는 ‘점령 통치권’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정전협정 전문의 서언에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해서 최후적인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한국에서의 적대행위와 일체 무장행동의 완전한 정지를 보장하는 정전을 확립할 목적으로...”라고 나와 있듯이 ‘유엔’사의 존재 이유는 적대행위와 무장행동으로 인한 충돌을 방지함으로써 한반도에서의 “정전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관할’이란 남북이 격렬하게 싸울 때 중간에서 정전을 유지하기 위한 중재적 ‘관할’이지, 남북이 화해하고 서로 왕래하거나 평화유지 행동을 하는 것까지 막아서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난번처럼 남북합의 아래의 철도 공동조사를 막아서는 행위는 ‘유엔’사 스스로의 권한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함으로써 나온 월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유엔’사가 앞으로도 남북의 관계개선에 사사건건 ‘관할권’을 들먹이며 어깃장을 놓을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유엔’사의 ‘관할권’은 우리의 주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민족적 자존심에 금이 가게 할 수도 있으며, 그로 인한 남북의 고통은 심해지고 결국은 원치 않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미연에 방지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가짜 유엔군이며 미국군일 뿐인 ‘유엔’사는 해체되어야 한다.
그리고 유명무실한 듯한 ‘유엔’사의 권한은 평시에도 이렇게 우리의 주권도 무력화시킬 만큼 막강하지만, 위기 시 또는 전시로 돌입하게 되면 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 권한들의 일부를 옮기면, 위기시 관할권의 핵심인 정전위기관리권, 전시 관할권의 핵심인 개전권, 주일미군기지 사용권, 자위대 동원권, 북한지역에 대한 점령 및 통치권 등 무시무시한 권한이 일개 미국의 4성장군인 ‘유엔’사령관에게 주어진다.
‘유엔’사의 개전권은 유엔 안보리의 결의도 필요없이, 한국 대통령과도 상의없이 유엔사 단독으로 전쟁을 개시해도 아무 법적 문제가 없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황당한가? 그리고 한국군의 전시작전권 환수 얘기가 나오지만, 우리 군이 연합사의 전작권을 받아와도 “‘유엔’사를 독립된 법적, 군사적 기관으로 유지”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다.
주일 미군기지 사용권에 대해서는, 전시에는 ‘유엔’사령관이 주한미군과 우리 군뿐만 아니라 주일미군까지 휘하에 편입시킬 수가 있는데, 8개에 달하는 주일 미군기지를 무제한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것이다.
자위대 동원권이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유엔’사의 지휘 하에 자위대가 우리 땅을 밟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우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일들이 ‘유엔’사에 의해서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이를 용인할 수 있는가?
끝으로 점령권이란, 미국이 아직도 “1950년 10월 7일 유엔총회 결의안에 의거해 북 점령시 유엔군이 점령과 통치의 주체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평화적으로든, 무력으로든, 북의 붕괴든, ‘유엔’사령부가 존속한다면 북쪽 지역에 대한 점령 통치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국민적 의사와 심정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헌법상 영토주권 조항과도 충돌한다.
껍데기만 남은 줄 알았던 ‘유엔’사가 알고 보니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위험천만한 권한을 보유하고 있다. 잠자는(체 하는)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잠에서 깨는 날에는 우리에게 어떤 사태가 닥칠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다.
나는 우리의 발목에만 미국의 쇠사슬이 채워져 있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목에도 보이지 않게 채워져 있다. 발목을 옥죄는 사슬보다 더 강한 쇠줄인데, 다만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러기에 미국군대 ‘유엔’사의 해체는 더욱더 절실해진다. 우리 남북 한반도인의 명운을 가를 ‘유엔’사, 미국은 꼼수 부리지 말고 ‘유엔’사를 하루 빨리 해체하라!
2018. 10. 24 평화연방시민회의 공동대표, 장준하부활시민연대 공동대표 여인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