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그리다가 목 잘린 안락공주

사람 맛이 가는 건 이언주 보믄 알지

김형민 PD | 기사입력 2019/04/25 [07:19]

눈썹 그리다가 목 잘린 안락공주

사람 맛이 가는 건 이언주 보믄 알지

김형민 PD | 입력 : 2019/04/25 [07:19]


당나라는 618년 건국돼 907년 망했다. 3백년 왕조니 중국 역사에서는 그리 짧은 왕조가 아니었다. 돌궐을 분열시키고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두고 이슬람 세력과 대결하는 등 강력한 제국을 이뤘고 개방적, 국제적 분위기로 상업과 국제 무역을 선도했던 왕조였다.

그러나 그 역사는 상당히 드라마틱한 롤러코스트다. 당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당 태종의 아들인 당 고종 때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원래 당 태종의 여자였던 무조에 흠뻑 빠진 고종이 그녀를 곁에 두었고 총명하고 수완 좋았던 무씨는 유약하고 무능했던 황제 고종을 조종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고종이 병석에 드러눕자 아예 수렴청정을 했고 맘에 안드는 태자도 갈아치워 버렸다. 무측천, 측천무후의 이름이 당 천하를 울렸다.

고종이 죽은 후 황태자였던 셋째 아들 이현을 황제에 올리니 이 사람이 중종이다. 그런데 이 중종이 아버지를 닮아서 마누라 말이라면 꼼짝을 못했다. 아내 위황후가 자신의 아버지를 재상에 올리라 청하자 그대로 하려다가 반대에 부딪쳤을 때 “내가 천자인데 천자의 자리인들 내 맘대로 못주겠는가.” 하고 말도 안되는 몽니를 부릴 정도였다.

무측천은 통탄했을 것이다. “어디서 저렇게 맹한 아버지를 빼닮아가지고선” 측천무후는 중종을 내쫓고 넷째 아들을 왕위에 올렸다. 이 사람이 예종인데 역시 성에 안찼던지 그예 아들로부터 제위를 빼앗아 버린다.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하다 할 여황제가 된 것이다. 나라 이름도 주나라로 바꿨고 수도도 옮겨 버렸다. 당나라가 일단 망한 것이다.

한편 마누라 말 들어 주려다가 황제에서 쫓겨난 중종은 지방으로 쫓겨났다. 귀양가는 와중에 중종의 아내 위황후는 딸을 낳는데 워낙 다급한 처지에 출산을 하고도 낡은 천으로 대충 감쌌던 아이라 하여 과아(裹児)라고 불렀다.

이 과아는 중종의 막내딸이었고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미모가 뛰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무측천은 자신과 일가붙이인 무씨들에게 황제를 물려주려 하다가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치자 다시 중종을 불러 황태자로 삼았고 측천무후가 실각한 뒤 중종은 다시 황제에 오른다. 과아는 안락공주가 된다.

안락공주 과아는 여전히 아름답고 총명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으나 그 총명함은 탐욕을 채우는 데 주로 발휘됐고 인간성은 점점 더러워져 갔다

언니와 더불어 ‘누가 누가 부유한가’의 경쟁 중에 아버지에게 당나라 시대 성스러운 의미가 있던 호수 곤명지를 탐내다가 좌절되자 부아가 치밀었던지 백성들을 동원해서 땅을 파고 물을 끌어들여 둘레 수십리의 호수를 만들어 버렸다.

똑소리가 나기는 했으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어긋나고 막 나갔던 안락공주는 마침내 아버지 중종에게 가서 아버지 아들 시원찮으니 자신을 황태녀(皇太女)로 삼아 달라고 졸랐다. 어차피 할머니도 황제였고 어머니 황후 위씨가 아버지를 맘대로 휘두르고 있었으니 자신이라도 못할 것 있냐는 욕심이었으렸다.

유약한 중종은 대신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는데 그 답이 이랬다. “그럼 부마는 뭐라고 부르실 겁니까. 황태녀부? 황태부마?” 도무지 말이 안되는 조합인지라 중종도 고개를 저었다. “안되겠다 야.” 안락공주는 앙칼지게 외쳐으리라. “왜 안돼? 이게 나라야? 흥. ”

자치통감에 따르면 연흠융이라는 하급관리가 황후와 공주의 국정 개입 난맥상을 황제에게 고발했는데 그는 궁궐을 나서자마자 황후측 자객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이 사실에 중종이 분노를 표하자 황후와 안락공주는 중종을 독살시켜 버렸다. 위황후는 시어머니처럼 황제가 되고 싶었고 안락공주는 황태녀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한때 귀양지에서 함께 고생했던 조가지처가 남편을 죽이고, 어려서 똑똑하여 아버지를 행복하게 했던 딸이 아버지를 죽인 셈이다.

그러나 여황제의 꿈은 며칠 동안의 남가일몽으로 끝났다. 야사에 따르면 중종을 독살한 뒤 안락공주는 “이제 나는 광야에 선 한 마리 야수와 같은 심정으로, 이 나라의 황태녀가 되고 황제가 되라는 천명을 좇을 것이다.”라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중종이 붕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안락공주의 고모 태평공주와 사촌 이융기가 연합한 봉기군이 황제의 독살을 규탄하며 궁궐을 습격했고 한창 눈썹을 그리며 화장하고 있던 안락공주는 고운 눈썹 그리던 얼굴 그대로 목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제위에 오른 이가 당나라의 중흥군주 현종이다.

대역죄인으로 취급돼 장안성 성벽에 효수된 안락공주의 얼굴을 보며, 그리고 우여곡절을 겪은 황궁을 바라보며 새 황제에게 바라는 바를 토로한 시가 전한다. 작자는 항상 그랬듯 미상이다.

사진은 안락공주와 위 사연과 관계 없다. 단지 눈썹은 좀 비슷할 거 같아서 가져왔다.

狂夜愛饍爺瞬止 광야애선야순지
미친 밤, 아버지에게 아양 떨며 음식 먹이니 잠깐 사이에 일은 끝났도다

光忌曖燦轝耘蜘 광기애찬여운지
빛이 어둠을 꺼려 찬란한 수레(이융기의 부대를 의미) 독거미를 갈아없애니

史覽魔弑家凌乾 사람마시가능건
역사는 굽어살피리. 악귀들이 지아비 죽이고 하늘을 능멸한 것을.

你彦奏補紊斡地 이언주보문알지
그대 선비들은 아뢸지니라. 어지러움 바로잡고 이 땅 다독이소서.

雅眉峙更李輅敲 아미치갱이로고
(잘린 목의) 아름다운 눈썹은 높이 달렸고 다시 이씨(당나라 황제의 성)의 수레 북을 울린다

歪泥理揷疾人苦 왜이리삽질인고
비틀리고 더럽혀진 도리 백성들 사이에 병처럼 꽂혀 고단케 하나

御書自恨撞假緖 어서자한당가서
임금께서 글 내리시되 스스로 후회하고 그릇된 계보 바로잡겠다 하시니

勿慢暖藁飢厦伍 물만난고기하오
마르고 주린 황궁들 따뜻하게 하기를 게을리 마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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